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PD수첩 최후진술서
    언론/MBC 2010. 1. 22. 23:05
    피고인 최후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작년 4월 29일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가 방송된 이후 무려 1년 8개월이 지난 오늘, 검사의 준엄한 구형을 받으며 그동안 저희 PD수첩 제작진에게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저희가 지적한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이 추가 협상을 통해 일부 수정되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일조했다는 보람도 느꼈었습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동료 언론인들이 주는 상을 받은 것입니다. 올해의 PD상, 기자협회 특별상, 그리고 제가 언론인의 사표로 존경하는 송건호 선생을 기리는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며, 그때 우리에게 상을 주며 격려해주고 함께 축하해주던 동료 언론인들과 PD수첩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국민이 있었기에 저희는 지난 1년 8개월간의 여러 사건들을 묵묵히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건 중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었던 것은 오늘 구형으로 마무리된 검찰수사였습니다. 검찰 수사로 저희 PD수첩 제작진은 군사정권을 지나온 후 대한민국 어느 언론인들도 겪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경험하였습니다.  
    체포영장 발부, 회사와 집에 대한 압수수색, 한 달여 간에 걸친 회사 농성, 그리고 체포가 이어졌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담당 피디는 농성하다가 체포되어 결혼식이 엉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개인 이메일이 전 국민에게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 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할 때 마다 책임피디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팀원들이 이런 고생을 하도록 이끌어 온 것이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작년 4월로 돌아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저는 CP로서 PD들과 작가들에게 똑같은 지시를 했을 것이고, 똑같은 고통을 감수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정책을 비판한 후 고위 공직자의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기 위해 검찰에 자진 출두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곡이 아니라는 것을 검사에게 검증받기 위해 취재원본을 검찰에 가져다 줄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니라 MBC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어느 언론인이라도, 그 위치에 있으면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선 본 PD수첩이 방송되기까지의 경위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미국산 쇠고기의 인연은 200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에 9월 당시 저는 평PD로서 다큐멘터리 MBC스페셜 “오해와 진실, 끝나지 않은 한미 FTA” 을 제작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FTA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방송하며 쇠고기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검사는 논고에서 제가 FTA반대론자로 저의 개인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PD수첩 본 방송의 제작을 지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언론인이 FTA협상의 문제점을 비판했다고 그를 FTA반대론자라고 정의하는 검사의 해석이 놀랍습니다.
    당시 제가 비판했던 것은 졸속적이고 준비가 부족하여 농민을 비롯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밀어붙이기 식 FTA협상 자체의 문제점일 뿐입니다. 이것은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제가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CP로 부임하기 전에 이미 PD수첩은 FTA 졸속협상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2006년에 두 차례 방송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다루었고, MBC 시사교양국의 ‘W’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광우병소가 발견된 미국 현지를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식품안전문제는 언론인들이라면 항상 주목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정부 정책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국민들이 언론에 지워준 사명입니다.

    다만 광우병 같은 문제는 관련된 과학적 용어들, 이를테면 BSE, SRM, vCJD, OIE, 편도, 회장원위부, 교차 감염 등이 생소하기에 평소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으면 개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년 PD수첩이 방송된 후 어느 언론사의 방송담당 기자는 자기는 그동안 광우병은 끓여먹으면 안전한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MBC스페셜을 제작하며 미국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에 대해 공부해둔 게 없었다면 작년 4월 쇠고기 협상 때 문제의식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이 방송을 기획하고 취재한 김보슬 피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김보슬 피디가 광우병 얘기를 꺼낸 것은 2008년 2월 초였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 다우너 소 동영상이 공개되고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진 직후였는데, 김보슬 피디가 그 동영상과 기사들에 관심을 보이며 쇠고기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침 관련 방송을 한 후였던지라 FTA와 미국 쇠고기 문제, 광우병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얼마 후에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앤디 그로세타 미 축산육우협회 회장이 초청되어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김보슬 피디는 그로세타의 한국 일정을 따라다니며 취재해보겠다는 아이템을 냈습니다. 당시는 아직 미국에서 동영상에 대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시점이었고, 미국 농무부 장관이 “대규모 리콜사태로 한국 일본과의 쇠고기협상에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한 직후였습니다. 그 와중에 그로세타가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와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할지 취재해보면 앞으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윤곽을 미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김보슬 피디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앤디 그로세타의 한국 방문 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바람에 취재 자체가 불가능해 그 아이템은 더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앤디 그로세타는 한국 방문 후 귀국해서 미국 축산업협회 홈페이지에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쇠고기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훗날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후엔 미국의 축산인들이 한국에서 큰 승리를 기록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쇠고기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보슬 피디는 당시 전문가들을 통해 그간의 협상 진행 과정이나 배경, 미국 광우병 시스템에 대한 정보 등을 모아두었는데, 4월 협상에 대한 취재를 갑자기 시작했을 때 자료조사와 사전취재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었습니다.

    김보슬 피디팀이 본 방송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취재를 시작한 것은 방송을 보름 앞둔 4월13일 경입니다. 취재는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왜냐면 협상도 갑자기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협상 재개 소식이 알려지던 때 김보슬 피디팀은 4월 29일 방송을 목표로 이미 다른 주제로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피디는 총선에 대한 아이템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17대 총선의 핫 이슈 중 하나가 뉴타운 문제였습니다. 김보슬 피디와 김은희 작가는 논란이 되고 있던 뉴타운 공약의 허와 실, 그리고 이후에 발생될 문제들을 점검하는 방향으로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아이템은 중간에 중단했습니다.
    MBC '뉴스후'와 아이템이 겹쳤기 때문인데, 그쪽이 먼저 취재를 시작했던 터라 '뉴스후' CP와 조율 끝에 우리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템은 제가 보기에도 좋은 아이템이었는데 당시 김보슬 피디팀이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아마 이때 총선 아이템을 중간에 접지 않았다면, 쇠고기 방송도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김보슬 피디는 총선 아이템을 접은 후 새 아이템을 찾았고 곧 쇠고기 협상을 들고 왔습니다. 협상이 발표된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갑자기 협상이 진행되는 게 이상했지만, 일단 전문가들을 만나 사전취재를 하되, 협상을 지켜보고 결과가 괜찮으면 방송시간을 줄이거나 혹은 빼자고 하면서 아이템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PD수첩 제작진이 주목했던 것은 2월의 쇠고기 리콜사태와 4월10일 사망한 것으로 보도된 광우병의심환자가 이번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습니다.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쇠고기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과,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맞춰 급하게 추진되는 것은 쇠고기 전면 개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협상타결이 가까워올수록 전면개방을 예측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가는 국회를 소집해 한미FTA을 비준해달라고 요구하며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곧 김보슬 피디도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제대로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러면 그 때가서 방송분량과 방송여부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검찰이 정치적 의도 운운하며 공안몰이하듯 수사했던 피디수첩 쇠고기 편의 기획의도와 방송하게 된 경위입니다.

    김보슬 피디가 미국현장으로 떠나고 국내 취재에는 이춘근 피디를 배정해 놓았습니다. 협상결과는 기존에 우리나라가 주장하던 과학적 사실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검역 주권까지 넘겨주고 국민의 건강권을 상당히 포기하는 협상에 비판이 잇달았습니다.

    그 와중에서 제가 놀란 것은 협상의 실무 총 책임자인 이 사건 고소인 민동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보의 발언이었습니다.
    저는 민동석씨가 라디오에 출연해 ‘광우병은 복어독과 같아서 제거하면 99.9%안전하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놀란 것은 그 인터뷰 진행자가 이 발언에 대해 전혀 반박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협상책임자의 광우병에 대한 인식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국민을 상대로 저런 식으로 홍보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협상을 보도하는 방송과 언론이 자세한 설명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을뿐더러 비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라는 대통령의 발언,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라는 농식품부 정운천 장관의 발언도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작팀에게 방송시간을 늘리도록 지시했습니다.

    한 회의 PD수첩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시사집중’은 10분 내외의 짧은 코너로 최근 벌어진 사건 위주로 취재 방송됩니다. 다른 하나는 ‘심층취재’로써 33분 내외로 제작됩니다. 이춘근 김보슬 피디 팀에 이중각 피디를 추가 투입하고 4월29일 방송은 ‘시사집중’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여 미국쇠고기 수입 문제만으로 방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지시와는 별도로 이미 취재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쇠고기 안전성 뿐 아니라 협상 과정의 문제점과 다른 나라와의 비교, OIE의 과학적 기준에 대한 취재물들이 속속 쌓여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쇠고기 협상이 과학적이고 상식적으로 타결되었다면 본 방송은 아마도 ‘시사집중’ 부분으로 축소되어 10분, 혹은 그 보다 짧은 분량으로 방송되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취재를 시작하면서 협상결과에 따라, 혹은 미국 현지 취재결과에 따라 방송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터뷰이에게 미리 고지했다는 것은 이미 법정에서 여러 증인들이 확인해 주신대로입니다.

    취재가 잘 되었다고 해도 취재범위가 방대하고 취재량이 많을수록 후반작업은 몇 배로 힘이 듭니다. 통상 피디수첩 한 아이템 취재 후 테이프 분량은 많아도 보통 100권을 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은 150권이 넘었고, 시간으로 환산하면 5천 분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일어 취재분까지 있었습니다. 5천 분을 40분 안에 구겨 넣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민과 취사선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뒤로 갈수록 시간에 쫓기고 마지막 후반작업은 그야말로 1분1초를 다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 제작진이 본 방송을 100% 완벽하게 제작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는 이 점에 대해 시청자께 여러 번 사과했고 지금도 깊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왜 그리 급박하게 제작했냐는 질문도 합니다.

    그러나 2008년 4월 29일의 상황은 협상결과의 장관고시가 보름 후인 5월15일로 예정되어 있던 때입니다. 일단 장관고시가 관보에 실리게 되면 법정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30개월령 이상 된 쇠고기의 수입이 즉각 이루어집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방송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대신 피디를 추가 투입하여 제작에 만전을 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제작진은 취재량을 소화하기 위해 거의 밤샘작업을 하는 중이었고 프로그램은 긴박하게 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제작진 상황은 검찰측 증인으로 소환되어 출두한 번역가 최OO씨의 증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 영어 번역 자막을 꼼꼼히 체크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초벌과 감수, 두 번이나 번역작업을 체크하는데 그런데서 오역이 생기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22년 동안의 방송생활 중, 온 국민이 할 줄 아는 영어를 두 번이나 번역하면서 오역 논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당시 그 바쁜 와중에 제가 걱정한 것은 번역의 잘못이 아니라 띄어쓰기 등 맞춤법 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막을 넣는 종합편집실에 또 다른 피디 한명을 더 보내 자막이 넣어지는 것을 뒤에서 보면서 맞춤법을 체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번역에서 발견된 오류의 최종 책임은 담당 피디와 CP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책임을 초벌 번역자나 2차 번역자에게 묻지 않는 것이 방송의 기본입니다. PD수첩도 이런 원칙을 견지해 왔으며 번역 잘못으로 인한 책임에 대해선 기꺼이 감수하여 왔습니다.

    방송 당일 마지막 더빙 작업은 방송에 투입된 세 명의 피디 외에도 다른 피디들이 맡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생방송이 시작되었는데도 제가 진행하는 방송실(부조종실)에 도착하지 못한 테이프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일은 생방송에서 드물게 있는 일입니다. 생방송이 시작되었는데도 더빙 중인 부분이 있었고, 부조정실에선 다음 테이프가 도착하지 않아 초비상 상태였습니다. 이 와중에 진행자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이 힘들어하는 것은 방대한 취재량을 40분 안에 녹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이라고 표현합니다만, 특히 본 방송은 더했습니다. 일본의 광우병 시스템과의 비교, 미 축산업자들은 30개월령 이상 캐나다 소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수입 반대한다는 사실 등등 중요한 내용이 너무 많아 시간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제작팀은 시간이 넘친다며 학교급식 부분을 빼자고 저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방송시간 걱정 말고 모두 넣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무차별적으로 수입되면, 값싼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선택할 수 없이 무조건 먹어야 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체 급식을 받는 학생들과 군경입니다. 저는 고교생 딸을 가진 아버지로써 학교급식은 꼭 넣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인 ‘KBS 스페셜-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에서도 이강택 피디는 학교급식을 길게 다루었습니다.

    제작시간을 초과하면 CP는 회사로부터 문책 당하기도 합니다. 시간 초과 경고가 누적되면 경위서를 써야합니다. 저는 프로그램 끝에 항상 방송되는 1분가량의 제작스탭 소개부분을 빼기로 하고 방송을 결정했습니다. 작년 초 검찰의 소환장에 본 방송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있던 것은 이렇게 스탭 명단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결국 제작시간은 4분이나 초과되어 방송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정부에서도 이번 정부에서도 쇠고기 문제는 쇠고기 문제일 뿐입니다. 저희에게는 어떤 정권, 어느 정부가 그런 협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쇠고기를 우리 국민이, 우리 아이들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보도를 하는데 정권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고려하는 언론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언론인들에게 이 정권을 지지하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사를 써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고소인인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과 민동석 차관보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수사의뢰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어언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본 사건의 피고인으로써 검찰의 여러 가지 거짓주장과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재판장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검찰은 제가 과거 ‘PD수첩-친일파는 살아 있다’를 제작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경험이 있어 본 방송도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제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것은 사실입니다. 저를 고소한 사람은 어느 사기업체의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조부를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 어느 유명 독립운동가의 무덤에 있는 비문을 변조하여 자기 조부의 이름을 새겨 넣도록 하는데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제가 폭로하자 명예훼손으로 저를 고소했습니다.
    당시 저는 검찰의 소환에 기꺼이 응하며 검찰청에 출두하여 수사를 받았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과 정운천 민동석씨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를 고소한 사람은 사기업체의 회장이며, 정운천 민동석씨는 고위 공직자로써 장관과 차관보였습니다. 그리고 본 방송은 이들이 집행한 정부정책을 비판한 것입니다.
    또한 검찰은 본 방송과 관련하여 검찰 출두를 거부하는 등 법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의 명예훼손 사건에는 앞에서와 같이 검찰에 출두해 성실히 수사에 응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인이 정부정책을 비판했다고 그 정책을 담당한 고위 공직자가 검찰에 고소를 하고, 동료 공무원인 검사가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순순히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도 쇠고기 협상이 잘 못되었다고 두 번에 걸쳐 국민에게 직접 사과한 바로 그 외교통상정책을 비판한 것과, 어느 사기업 소유자의 명예훼손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찰은 그들의 가진 권한을 남용해 일부 수구신문 기자들과 공모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오히려 피고인들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간단히 예를 들겠습니다.

    “바롯은 주치의가 아니고 아레사 빈슨과 전혀 관계없는 의사다.”
    “어머니가 비타민 처방 얘기를 했는데 PD수첩이 일부러 누락했다.”

    그동안 검찰이 수구언론과 손잡고 유포한 이런 허위사실은 공판과정에서 그 거짓이 낱낱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거짓말은 취재 원본의 일부만 공개하면 간단히 밝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의사 바롯에 대한 검찰의 거짓말은 취재 원본 단 십여 초 분량만을 보여줘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찰과 수구언론의 거짓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언론인에게는 목숨과 같은 취재원본을 검찰에 가져다 줄 수는 없었습니다. 검찰은 취재원본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법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거짓말을 퍼뜨리고 취재원본을 달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헤치며 헌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유포한 거짓말 중의 백미는 아레사 빈슨 가족이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류를 외교라인을 통해 입수했다며 수구신문에 유포한 허위사실입니다. 소송서류 어디에도 vCJD라는 말이 없고 모두 CJD였다는 것이 검찰이 저희들을 기소하기 직전 퍼뜨린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레사 빈슨 부모가 의료진을 상대로 낸 소송서류에는 딸이 vCJD로 진단받았다고 정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저희 PD수첩 제작진이 그 먼 미국의 법원에서 이 소송서류를 구해오지 못했더라면 검찰의 거짓말은 폭로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검찰이라면 외교라인을 통해 구해온 - 다시 말해 국민의 세금으로 구해온 - 자료를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어야합니다. 그리고 피고인 측에게도 제공했어야합니다. 이것이 제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법치주의 국가의 올바른 법집행 방법입니다.
     
    2009년 10월 국경 없는 기자회는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평가 대상 국가 175개 중 69위였습니다. 지난 해 47위에서 22단계 떨어졌습니다. 파푸아 뉴기니(56위)보다 못하고 부탄(70위) 바로 위입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하락 이유로 언론인 체포, 특히 YTN과 PD수첩의 검찰 수사를 언급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동안 저희가 두려워했던 것은 체포 등 검찰수사와 제작진의 처벌이 아니라, 정치 검사들의 강제수사가 언론자유에 끼치는 위축효과입니다.

    정부정책을 비판하면서 제작중에 실수를 한다면 PD수첩처럼 되겠구나라는 전시효과 - 가족 앞에서 체포당해 철창에 갇히고, 오랏줄에 엮여 검찰청으로 이송되어야하고, 집구석구석과 컴퓨터가 수색당하고, 회사에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몰려오며, 검사들이 흘리는 거짓말에 프로그램이 난도질당하고, 제작진은 취재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무능력한 언론인으로 발표되며, 심지어는 일기나 편지까지 전 국민 앞에 공개 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바로 권력자와 정치 검사들이 노리는 더러운 위축 효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들은 어렵고 고달픈 비판 보다는 기왕이면 쉽고 편한 내용의 기사를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100% 완벽할 자신이 없으면 정책 비판에 쉽게 뛰어들 수 없을 것입니다. 언론인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되면 될수록 민주주의는 뒷걸음 칠 것입니다.

    이러한 위축효과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건강권을 반드시 알려져야 할 사실들이 감춰지거나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경찰청을 포함한 정부청사의 식당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취급하지 않지만, 일부 전의경에게는 미국산 쇠고기가 공급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일부 방송사의 뉴스에는 전혀 보도되지 조차 못했습니다.

    언론의 기본 사명은 정부정책의 비판과 감시입니다. 비판과 감시가 활발한 사회가 좋은 민주주의 사회이며, 강한 언론이 강한 정부를 만든다는 격언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관리의 명예훼손 소송을 아예 금지하고 있거나 혹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나라가 많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본 사건의 원래 수사담당 부장검사가 사표를 내며 정치검사들의 명령에 저항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협상의 문제점과 그 동안 광우병에 대한 리스크 거뮤니케이션을 소홀히 했던 농림식품부의 행위 등에 대해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격을 비판하거나, 개인의 품성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PD수첩 제작진의 관심사항은 국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가였지 그걸 행사하는 사람의 인격과 품성평가가 아닙니다.

    고소인들이 국민들로부터 받았다는 각종 비난이 모두 PD수첩 때문이라는 증거 또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 방송 전에도 이미 그들에 대한 비난이 청와대와 농식품부 홈페이지, 각 종 포털의 댓글에 쇄도했는데 이것이 PD수첩의 방송 후와 어떻게 다른지 구별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본 협상은 오히려 미국의 선물’이라는 등 고소인의 돌출 발언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의 비난이 오히려 거세어졌을 뿐입니다.

    저희 생각은 이렇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공직자들은 그가 펼치는 정책의 호불호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여러 가지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검찰 권력을 이용해 강제 수사하는 것은 본 PD수첩 사건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고인을 대표하여
    조능희 전 PD수첩 CP
Designed by Tistory.